참기름 한 병이 나오기까지
씻고, 볶고, 짜고, 거릅니다. 네 단계가 전부 가게 안에서 끝납니다. 유리 너머로 보이는 그 일을 순서대로 적었습니다.
저희는 참기름을 업체에서 통으로 받아오지 않습니다. 깨를 들여와서 가게에서 짭니다. 그 말을 자주 하는데, 정작 "짠다"는 게 뭘 하는 건지 물어보시는 분은 드뭅니다. 그래서 한 번 풀어 적습니다. 읽고 나면 왜 저희 기름이 맑은지, 왜 병마다 향이 살아 있는지가 설명 없이 이해되실 겁니다.
시작깨가 들어온다
최상품 참깨와 들깨를 씁니다. 기름은 깨 이상으로 좋아질 수 없습니다. 씻고 볶고 거르는 건 깨가 가진 걸 망치지 않고 꺼내는 일이지, 없는 걸 만들어내는 일이 아닙니다. 그래서 깨를 고르는 데서 절반은 정해집니다.
하나1씻기
깨는 밭에서 옵니다. 흙이 묻어 있고, 잔돌이 섞여 있고, 알이 차지 않은 쭉정이가 있습니다. 이걸 물에 여러 번 헹굽니다. 물을 갈아가며 흙을 빼고, 바닥에 가라앉는 돌을 골라내고, 위에 뜨는 쭉정이를 걷어냅니다. 헹군 물이 맑아질 때까지 합니다.
여기서 게을러지면 끝까지 냄새가 남습니다. 흙내, 먼지내, 쭉정이가 타면서 나는 탄내. 나중에 거르는 걸로는 안 빠집니다. 씻기는 제일 재미없는 단계고, 그래서 제일 건너뛰고 싶은 단계고, 그래서 저희는 제일 오래 합니다.
씻은 깨는 물기를 빼고 말립니다. 젖은 채로 볶으면 볶이는 게 아니라 쪄집니다.
둘2볶기
말린 깨를 볶습니다. 여기서 향이 납니다. 볶으면서 깨 속 성분이 바뀌고, 우리가 아는 참기름 냄새가 이때 생깁니다.
많이 볶지 않습니다. 태우면 쓴맛이 나고 색이 검어집니다. 그렇다고 덜 볶으면 향이 안 올라옵니다. 그 사이 어딘가를 그날 깨 상태를 보면서 맞춥니다. 깨 종류가 다르면 불이 다르고, 같은 참깨라도 들어온 때에 따라 다릅니다. 정해진 분 수가 있는 게 아니라, 색과 냄새와 소리로 잡습니다.
생들기름은 일부러 더 덜 볶습니다. 그래서 향이 순하고 색이 연합니다. 볶는 정도 하나로 들기름과 생들기름이 갈립니다.
셋3짜기
볶은 깨를 식기 전에 압착기에 넣습니다. 눌러서 기름을 짜는 겁니다. 첫 기름이 떨어지는 순간 가게 안에 향이 퍼집니다. 이 일을 하는 이유가 그 몇 초에 다 있습니다.
짜고 남은 깻묵은 따로 나옵니다. 기름을 짠 뒤의 깨 덩어리인데, 여기까지 오면 깨는 할 일을 다 한 겁니다.
넷4거르기
막 짠 기름은 탁합니다. 깨 가루와 앙금이 섞여 있습니다. 그대로 병에 담으면 며칠 뒤 바닥에 찌꺼기가 가라앉고, 그 찌꺼기가 먼저 변하면서 기름 전체를 텁텁하게 만듭니다.
그래서 여러 번 거릅니다. 한 번 거르면 눈에 보이는 가루가 빠지고, 다시 거르면 그보다 고운 앙금이 빠집니다. 거를수록 맑아집니다. 병을 들어 빛에 비췄을 때 투명하게 보이는 건 이 단계를 건너뛰지 않아서입니다.
마지막5병에 담는다
맑아진 기름을 병에 담고 참조은 라벨을 붙여 매대에 내놓습니다. 여기까지가 한 병입니다.
이 다음은 손님 몫입니다. 참기름은 서늘한 찬장에, 들기름과 생들기름은 냉장고에. 그 얘기는 들기름 보관법에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.
그래서받아다 파는 기름과 뭐가 다른가
받아다 파는 기름
- 어디서 어떻게 짰는지 파는 사람도 모른다
- 큰 통에 담겨 오래 보관된다
- 병에 옮겨 담는 게 가게가 하는 전부
가게에서 짜는 기름
- 깨부터 병까지 한 자리에서 —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다
- 짜서 바로 내놓으니 오래 묵지 않는다
- 짜는 걸 유리 너머로 보고 살 수 있다
어느 쪽이 더 맛있다고는 안 하겠습니다. 맛은 드시는 분이 정하는 겁니다. 다만 저희 쪽은 손님이 확인할 수 있는 것만 팝니다. 그게 저희가 손이 많이 가는 쪽을 택한 이유입니다.
매일 짜나요
거의 매일 짭니다. 물론 깨 상태나 나가는 양에 따라 안 짜는 날도 있습니다. 대신 짜 둔 기름을 오래 묵히지는 않습니다.
짜는 걸 볼 수 있나요
네. 가게 안쪽이 유리라서 지나가시다 보실 수 있습니다. 짜는 중이면 향으로 먼저 아실 겁니다.
들기름도 같은 순서인가요
같습니다. 씻고, 볶고, 짜고, 거릅니다. 들깨는 참깨보다 빨리 변하는 기름이 나오기 때문에 짜서 바로 내놓는 게 더 중요합니다. 왜 그런지는 참기름과 들기름 차이에 있습니다.